<Book Review> 생태민주주의, 구도완 저
- 박숙현
- 2018년 2월 4일
- 4분 분량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시민환경연구소에서 2012년 가을 '시민환경포럼'을 준비하면서 박사님께 특별강연을 부탁드렸다. 당시 환경운동의 역사를 정리하고, 운동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시면서 생태적 민주주의를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은 생태민주주의가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 후 박사님께서 꾸준히 녹색을 꿈꾸는 활동가들이나 청년들과 이런 생각을 나누시면서 다소 청중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정리하여 올해 초 책을 발간하셨다.
얼마전 박사님을 만난 자리에서 책을 '선물'받아서 너무 감사했다. 출간 소식에 주문을 하려고 맘 먹고 있던 차였는데, 책을 들고 만나뵙지 못해 무척 죄송했다. (물론 앞으로 타인에게 선물할 때 종종 사서 드리는 걸로 ^^) 그래서 그 답례로, 박사님께서는 전혀 기대하지 않으시겠지만, 부족하지만 책을 읽고 감히 리뷰를 남기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대통령 하나 바꼈다고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마음을 갖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환경문제에서 시작된 자본주의 경제발전의 문제는 누구나 비판하는 보편적 수준이 되었지만, 그것을 극복할 대안을 제시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생태적인 삶을 이야기하고, 친환경적 소비를 이야기 하긴 하지만 패러다임의 변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담아내기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생태민주주의>는 비교적 구체적인 행동을 제안하고 있어서 매우 반가운 책이다.
자본주의의 문제를 '인간의 탐욕 (greedy human)'과 같은 인간본능이 가진 문제로 연결시키는 학자들도 있고, 그 때문에 현재의 물질주의와 갈등문제를 매우 고치기 어려운 문제라고 규정짓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과연 인간의 탐욕은 본능적인 것일까? 맹자의 말처럼 선하게 태어나지만 물욕으로 악해진다거나, 순자의 말처럼 태어날 때부터 악하게 태어난다는 말은, 우리의 삶을 쉽게 무기력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런 면에서 저자를 포함한 생태민주주의자들은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세(The Anthropocene)의 문제를 인간이 가진 탐욕이 아니라 그것을 부추기고 확산시킨 기술, 공업, 자본, 국민국가와 같은 제도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제도를 공부해온 나의 입장에서, 제도(institution은 norm과 같은 사회적 규정, 문화, 종교, 관습 등을 포함)는 행동을 주관하는 주요한 매개로 작동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특히 국가의 정책(policy)은 제도 중 일부분이지만 때론 우리의 삶에 매우 지대한 영향을 주기도 한다. 세금이나 부동산 등 굵직한 제도 변화를 통해 국민들 일상의 삶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최근 암호화폐의 거래소 폐지 등 몇가지 발언으로 암호화폐 가치가 눈에 띄게 변하고, 그 이후 P2P가 아닌 거래소의 역할에 대한 비판이 대두되면서 김치프리미엄까지 붙었던 비트코인의 가격이 반토막 난 사례를 보면서 자본의 움직임에 국가의 영향력은 여전히 매우 강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편으론 우리가 쓰레기 종량제를 실시하면서 그것이 우리의 행동변화를 단기간 견인한 것은 분명하지만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미흡하다는 것 역시 인식하게 된다. 여기서 더 나아가 국가의 개발주의가 만들어온 상채기가 여전히 남아있는 우리의 국토와 자연을 바라보면서, 국가 개발주의의 허상과 비판적 생각을 떨쳐내기란 매우 어렵다.
국가는 분명 근대이후 오랜시간 우리의 삶을 지배해 왔지만, 그것보다 더 오랜시간 우리의 정서와 관습을 만들어온 배경에는 국가 이전의 공동체가 있었음을 떠올리게 된다. 저자 역시 공동체와 생태적 시민성을 강조하고 있긴 하지만 국가의 역할 역시 중요하게 주문하고 있다. 시민의 자치만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사회에서 꾸준히 활동해 온 저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주문은 쉽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국가주의에 익숙한 많은 독자들의 입장에서야 고개를 끄덕였을 부분이기도 하지만 국가를 넘어선 공동체 중심의 변화를 보다 강력히 주장하지 않은 것이 내게 있어선 조금 아쉬운 면이었다. 물론 저자는 국가에 한정해서 자연을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지구적 시각을 갖는 '세계시민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국가주의와 유엔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 환경레짐(international environmental regime)이 무너지고 지구환경네트워크가 자리잡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이미 주창되었던 바이기도 하다. 국제 환경단체들이 앞다투어 생겨났고, 국제 네트워크를 통한 연대의 노력은 환경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온 국가들에게 강력한 압박으로 작용하였다. 환경단체를 넘어서 모든 시민들이 세계시민으로서 인식을 해야만 빈곤문제, 사막화, 기후변화, 난민 등 지구 공동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공감하는 바이고, 나 역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설파하는 1인으로서 이에 대한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세계시민, 공동체, 마을운동 모두 생태민주주의를 만드는 중요한 기초이지만 저자가 말한 '생태민주적 전환의 비전'은 어떤 면에서는 전체 경제구조의 변화로 귀결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기술, 생산방식, 노동, 소유의 전환은 모두 경제활동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중심에는 '효율'이라는 원칙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효율성은 '적은 노력'으로 '최대 효과'를 얻는 일이다. 과연 적은 노력은 무엇이고, 최대효과는 무엇일까? 노동의 구조에서 더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서 자본가 혹은 경영자에게 최대의 이익을 남기는 구조. 모든 악의 출발이 이런 매우 단순한 원칙에서 출발한 것은 아닐까. 자연의 가치를 최소화하고, 미래의 가치나 위험을 최소화 함으로써 현재의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불순한 시도, 이것 역시 이러한 매우 단순한 효율성의 원칙에 기인하고 있진 않을까.
얼마전 내 페북에 '소비총량제'라는 말을 쓴 적이 있다. 책의 내용과 조금 동떨어진 이야기지만 북리뷰 자리를 빌어 이 얘기를 조금 더 펼쳐보자면, 이런 것이다. 우리가 뷔폐를 가면 같은 돈을 내기 때문에 더 많은 음식을 먹고 와야 본전을 뽑는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같은 값에 더 많은 결과를 얻어내는 효율에 익숙한 우리 삶의 방식이다. 그래서 과식하게 되고, 우리 몸엔 '잉여'가 쌓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근래에는 뷔페를 가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오히려 같은 값에 한가지 제대로 된 일품요리를 먹고자 하는 이들이다. 소비 총량제는 양을 정해놓으면 보다 가치있는 일로 그 양을 채우려는 행동의 변화를 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시 노동으로 돌아와서, 보단 싼 값에 노동자를 고용하거나 열정페이를 강요하는 구조, 하청에 하청을 주면서 안전을 팔아 자본가의 이득을 쌓는 구조, 자본을 위한 기술발전, 더 많은 소비를 강요하는 기술발전의 구조 이 모든 것이 원칙보다는 효율과 결과에 집착하는 현재의 경제의 평가구조와 시장경제의 철학에 기반한다.
내 원칙은 이런 것이다. "한만큼 얻는다." 적게 일하고 많이 받는 것이 아니라, 한만큼 받는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대기업에 취업하려는 취준생의 마음엔 자신의 능력과 가치에 대한 생각보다는 같은 능력이라도 더 많이 주는 곳을 선택하려는 마음이 당연히 가득할 것이다. 노력하는 만큼의 보상이 아닌 적은 노력에 더 많은 보상이 주어지는 곳을 찾아 헤매는 마음, 인지상정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린 그런 효율성에 그저 길들여져 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연은 매우 공정하다. 우리가 주는 영향만큼 그 피해가 나타난다. 시간이 조금 적게 걸리든 혹은 조금 더 걸리든. 특히 생물다양성이 파괴되고, 남아있는 자원이 적어지면 적어질수록 그 영향은 지수적 관계로 나타나게 된다. 기후변화가 그렇고, 사막화 현상이 그렇다. 생태민주주의는 내가 말한 매우 근본적인 원칙을 제시하진 않지만 기술, 노동, 생산구조, 소유 등 많은 부문에서 전환적 시도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전환이 이루어질 때 효율을 중심으로 발전해 온 경제성장과 자본주의 중심의 가치관을 변화시킬 것으로 본다. 제도와 구조의 변화를 중심으로 가치관의 변화를 안착시키려는 시도라 볼 수 있다.
내 말에 퍼뜩 불편한 마음이 되신 분들이 있을 것 같다. 효율적인 것이 뭐가 나빠? 나 역시 거의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고, 최근에서야 이 말이 매우 불편하게 자리잡기 시작했다. '정당'하다는 말, '공정'하다는 말이 '정의'라는 말로 자리잡기 시작한 요즘에서야 효율보다는 공정함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나의 이익과 공정함을 바꿀 수 있을 그 즈음에, 우리사회에는 생태민주주의가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음...그래서 생태민주주의가 뭐라고?" 라는 질문을 던지시는 분은 꼭 책을 사서 읽어보시라. 서평을 쓰면서 가장 핵심인 '생태민주주의'의 정의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마치 영화 스포일러가 될까봐 조심하듯이 말이다. 책의 사이즈도 매우 생태적이다.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들고 보기에 딱 좋은 사이즈이고 분량도 매우 적당해서 내용이 가진 무게감을 조금 덜어줄 것이다.
끝으로 이런 좋은 책을 읽을 기회를 '선물'해 주신 구도완 박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p.s. 내가 왜 '선물'에 따옴표를 붙였는지도 책을 읽고 나면 이해하실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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