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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사태와 국가 취약성


메르스가 휩쓸고 간 한국의 모습은 화장기 없는 그녀의 얼굴을 연상시킨다. 민낯을 드러낸 그녀의 모습은 창백한 입술과 넓게 드리운 다크 서클까지, 환자가 따로 없다.

공공기관과 언론, 병원은 사태수습으로, 공교육과 사교육은 빗발치는 학부모들의 전화로, 관광업과 요식, 숙박, 레져산업, 전통시장까지 고객을 상대하는 대부분의 업소들이 경제적 위기로 잠 못 이룬 밤들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확진자가 많아진 상황에서 국가체면과 위상은 말이 아니다. 그럼 이토록 우리나라가 전염병에 취약한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의 초기대응 실패는 당연한 결론이겠지만, 그 외에 우리나라가 가진 취약성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출처: 뉴스타파

취약성에 대한 연구는 식량안보, 빈곤, 자연재해 분야에서 주로 발달하였지만, 근래에는 공중보건과 기후변화 문제로 그 적용이 폭넓어지고 있다. 기후변화에 의한 자연재해에 대한 취약성은 외부적 충격과 교란에 노출될 확률(UNDP, 2007)을 일컫기도 하고, 기후상황이나 악영향에 노출되어 쉽게 영향을 받거나 극복하지 못하는 정도(IPCC, 2007)를 의미하기도 한다. 취약성은 물리적으로 외부 충격을 받을 확률이 높은 지역, 예를 들면, 홍수나 가뭄, 지진 등 자연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역일 경우 당연히 높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이러한 지역은 누적된 경험적 지식이 많아 외부충격에 대한 대비와 대응체계가 발달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물리적 환경보다는 사회적 환경이 취약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사회적 환경이라 함은 의사표현의 자유와 공동체 자치성, 경제활동의 다양성 등의 사회적 요소를 의미한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이 취약한 상황에서 도시화와 환경파괴, 다양성 훼손 등은 사회적 압력을 높이고, 여기에 직접적인 외부 충격이 가해지면 집단적 갈등과 신뢰저하 등 사회 전체가 충격의 부정적인 영향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된다. 슈퍼 전파자의 이동과 비정규직 인력에 대한 홀대는 사회적 취약성을 드러내 준 예이다.

얼마 전 발표되었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더 나은 삶 지수’는 한국이 이러한 취약성에 노출되어 있음을 일깨워주었다. 회원국과 브라질, 러시아를 포함한 총 36개 국가 중 우리나라의 ‘사회적 연계(공동체)’ 부문은 최하위를 기록하였다. ‘일과 삶의 균형’은 33위였고, ‘환경’은 30위에 그쳤다. 이미 알려진 노인 빈곤률과 자살률, 경제적 양극화 등을 고려했을 때 사회적 취약성은 우리가 체감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다. 아파도 의지할 사람이 없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동한 슈퍼 전파자는 지역에서 돌보아졌어야 했지만 그러한 시스템은 없었다. 파견 근무나 비정규직에 대한 관리 소홀은 그들이 하나의 공동체 일원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내가 함께 일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밥을 같이 나눠먹을 사람이 누구인지 그 경계는 소속이 아닌 공동체의 개념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정책적으로도, 메르스와 같은 공중보건의 위기가 왔을 때, 정부가 주도하는 획일적이고 기술적 접근이 비용효과적인 방법인지, 공동체 네트워크와 같은 사회자본에 의한 방법이 더 효과적인지는 선택의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가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협력적이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국민 개인이 보건당국과 직접적인 접촉을 해야 하고, 정보공개 등 정부의 방침이 혼선을 빚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취약성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으로서 공동체를 통한 회복력 강화는 이미 선진국에서 활용되고 있다. 무한경쟁과 배타적 네트워크에서 벗어나 국민 스스로는 주변으로 시선을 돌리고, 정부는 이를 지원하기 위한 노력을 고민해야 한다.

(참고문헌)

IPCC, 2007, Fourth Assessment Report: Climate Change 2007: Working Group II: Impacts, Adaptation and Vulnuerability (2.2.4 Advances in vulnerability assessment).

UNDP, 2007, Human Security, “Vulnerability and Sustainable Adaptation” (K. O’Brien and R. Leichenko) Human Development Report 2007/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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