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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환경론


안양시에 처음 이사를 왔던 것이 1993년이다. 잠실벌에서 10대를 보내고 나머지 20대를 이곳에서 보냈다. 잠실 아파트촌에서 자란 내게 신도시는 특이할 것도, 딱히 부족해보이는 것도 없는 그런 곳이었다. 생활도 편리하고, 안양이지만 서울에 못지않은 교통편도 있어서 큰 불편이 없었다. 아마도 많은 수도권 시민들은 이러한 점때문에 도시를 매력적으로 느끼고 비싼 집값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거주하고 있을 것이다.

지속가능발전에 이어 도시환경론 수업을 담당하게 되었다. 지속가능발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단지 그 영역이 도시라는 점에서 범주가 정해졌을 뿐이다. 우리나라 도시화 수준에 맞춰 행정구역으로 따지자면 약 90% 이상의 학생들이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이다. 이들이 보고자란 도시의 모습은 내가 올려놓은 안양시의 사진과 비단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즈막한 산이 있었고, 농지가 있었던 터를 갈고 닦아서 반듯반듯한 아파트 블럭들을 만들고, 적당히 자동차가 다니고, 적당히 녹지가 있고, 적당히 부대시설을 갖춘 그런 도시.

과거의 안양시

내가 평촌역에서 사무실로 가면서 늘상 지나다니는 지하도에는 과거와 현재의 안양시의 모습이 벽면에 크게 장식되어 있다. 수십번도 더 지나다니면서 본 이 사진이 오늘따라 특히 내 눈을 빼앗은 것은 무슨 이유일까? 찢어지게 가난하고, 먹을 것도, 입을 옷도 넉넉하지 않았던 그 시절의 사진. 홍수가 나고 물난리 때문에 늘 고생하던 그 시절의 사진을 보면서 누군가는 "새마을운동"을 떠올렸을 수도 있겠고, 누군가는 "한강의 기적"과 같은 경제성장을 떠올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두 사진을 보면서 "사람"을 생각했다. 과거의 사진을 보면 안양천/학의천이 아이들의 최고의 놀이터라고 소개하면서 아이들과 아주머니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 역시 대구 수성천에서 매일같이 놀았고, 사진속 저 아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내가 6살정도 될 무렵부터 하천이 완전히 마르는가 싶더니 공사가 진행되어서 도로가 들어와 버렸다. 대홍수를 이겨낸 안양인들의 사진 속에서, 자연재해로 인한 막대한 피해와 손실이 있었겠지만 재난을 극복하려는 안양 주민들의 모습 속에서 "동네" "공동체" 이런 단어를 떠올리는 내가 너무 천진난만한 것일까? 신도시의 시멘트 속에서 적절히 배치된 녹색공간과 공원, 사람이야기는 없고, 온통 도시의 아름다움을 드러낸 사진 속에서 사람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물론 지금의 안양은 처음 사진보다는 더 활기차다. 중앙공원 한가운데 있는 분수대와 물길에는 아이들이 나와 놀고 토요일이면 공원 주변에는 벼룩시장도 열리고 축제도 종종 열린다. 평소에도 파워워커들이 수시로 운동을 하고 자신들의 삶을 즐긴다. 그런데 뭔가 아쉽다. 파괴되지 않은 자연을 보전하는 것과 인공으로 만든 녹지를 갖는 것 무엇이든 어느정도 환경에 기여를 한다. 미세먼지 저감이나 정서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안에 무엇인가 빠진 것 같은 기분이다.

함께 할 무엇인가를 찾기 어려운 것은 아닐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공동체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도 생각해 보았다. 당위적인 이유가 아닌 현실적이고 간절한 이유가 있을까? 잘못된 일이 있으면 신고하고, 청원하고, 소송하고. 잘 된 일이 있으면 상 주고, 칭찬해주고. That's all. 이런 것은 함께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인간의 욕망일까? 일상에서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돕고 싶고, 같이 나누고 싶고. 사회적 존재로서의 욕망. 우리가 처음 소셜미디어에 열광했던 것처럼.

"우리는 도시에서 행복한가?" 찰스 몽고메리의 책을 떠올려 본다. 적당한 거리와 적당한 교류가 도시민에게 행복감을 준다고 했던 것 같다. 행복감은 절대로 고층 빌딩에서 나오지 않는다. 획일화된 인공의 자연속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갖지 못한 무엇인가를 획득한다고 해서 오는 것도 아니다. 그가 말한 도시의 모습, 사람들이 서로 오가며 마주치며 걷는 도시의 모습이 현재로서는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도시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뭔가 아쉽다. 과학기술이 인간을 대체하고 있는 이 시대에 내가 내 이웃과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은 무엇이고, 함께 노력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도대체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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